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창의성을 이루는 세 가지 구성요소는?'

아이디어

문명을 변화시키는 창의성은 한 개인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고가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다른 사람에게 이해 가능한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검열을 통과해야 하고, 해당 문화 영역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창의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은 창의성이란 세 가지 주요 부분으로 이루어진 체계의 상호관계를 통해 밝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일련의 상징적 규칙과 절차로 이루어진 영역입니다. 수학은 하나의 영역이며, 좀더 세분화한다면 대수와 정수이론도 각각 하나의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역이란 우리가 보통 문명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공동체나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상징적 지식을 말합니다. 

 

창의적 체계의 두 번째 요소는 영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감시병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활동 현장입니다. 현장에서 하는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그 영역 속에 포함시킬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각 예술의 현장은 미술 교사, 미술관장, 미술 수집가, 비평가, 문화를 관장하는 재단과 정부기관 등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장에서 새로운 미술 작품을 인정하고 보존하며 평가하게 됩니다.

 

창의성 체계의 세 번째 요소는 개인입니다. 창의성은 어떤 사람이 음악, 공학, 수학과 같은 주어진 영역의 상징을 사용해서 새로운 사고나 새로운 양식을 발전시키면, 그 영역의 현장이 그러한 새로움을 선택해서 관련 영역에 포함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만약 포함한다면 다음 세대는 그 새로움을 기존 영역의 일부로 접하게 될 것이며, 만일 다음 세대가 창의적이라면 다시 그 영역을 좀더 변화시킬 것입니다. 때로 창의성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갈릴레이는 실험 물리학을 창시했으며, 프로이트는 기존의 신경병리학영역에서 정신분석학을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계자가 현장에서 각각 독립적인 영역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갈릴레이와 프로이트의생각은 영향력이 없었거나 흔적도 없이 살라져버렸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창의성이란 기존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기존의 영역으로부터 새로운 변형을 만드는 행위나 사고, 또는 작품을 말합니다. 또한 창의적인 사람이란 한 영역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는 사고나 행위를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어떤 영역도 소속 현장으로부터 대내외적인 승인이 받지 못하면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선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일반인들과 특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창의적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그의 ‘창의적’인 성향만으로 부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창조해낸 새로움이 해당 영역에 포함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기회와 인내심, 또는 적시적소에 있었던 행운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창의성은 영역, 현장 그리고 개인과의 상호관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의 창의적 성향은 어떤 영역을 변화시킬 만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일에 필요한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접해보지 않은 영역에서 창의적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진 아이라고 해도 수학의 규칙을 배우지 않고는 수학에 공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규칙을 배운다고 해도 새로운 업적을 인정하고 입증해주는 현장이 없다면 창의성을 증명해 보일 수 없습니다. 어떤 아이가 적당한 책을 읽고, 적당한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수학을 배울 수는 있지만 영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업적의 정당성을 증언해주는 교사들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창의성은 기존의 영역과 현장에서만 입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부인은 보육에서 창의적이다’ 또는 ‘이 여자는 지혜로움에서 매우 창의적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보육과 지혜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극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특정한 규칙과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은 영역이며, 창의적이라는 주장의 타당성을 판가름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현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움이란 종종 우리의 생존과 관계가 없고 좀더 판단이 쉬운 영역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반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역에서는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새로운 컴퓨터 게임, 록 음악, 또는 경제이론이 정말 새로운지에 대해 합의를 볼 수 있지만, 인간적인 이해와 동정에 관련된 활동에서는 새로움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창의성의 속성에는 종종 불가사의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가 라파엘로의 명성은 교황 줄리어스 2세의 궁정에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몇 번에 걸쳐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레고리 멘델은 그의 사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실험유전학의 창시자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은 몇 세대 동안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라파엘로, 멘델, 그리고 바흐는 창의적이었으나 변덕스러운 사회적 인식과 함께 그 명성이 변화해왔을 뿐이라고 이해해왔습니다. 그러나 창의성을 위한 조건에 따르면, 창의성을 우리의 인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멘델의 경우, 그의 실험적 발견은 19세기 말 영국의 유전학자들이 진화론을 인정하기 전까지 그다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는 창의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라파엘로의 창의성은 미술사학, 미술비평이론,그리고 미적 감각의 변화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창의성의 구성요소에 의하면, 라파엘로는 16세기와 19세기에는 창의적이었으나, 그 사이나 그 이후에는 창의적이 아니었습니다. 라파엘로는 사회가 그의 작품에서 감동을 받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때 창의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미술을 아는 사람들의 눈에 도식적이고 고리타분하게 보인다면, 그는 기껏해야 뛰이난 제도공이나 꼼꼼한 채색가로 불려질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창의적인 업적이란 개인적인 통찰력 뿐 아니라 영역과 현장에 의한 공동작품이기 때문에 역사가 진행되면서 거듭해서 건설되고 파괴되고 재건설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시인 앤서니 헤치는 이러한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문화적 명성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때로 하찮고 근소한 차이로 말입니다. 최근 영문학과 회의에서 한 동료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다른 건 몰라도 여자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은 그의 작품을 가르치는 것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죠. 그때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었지만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면 어떤 작가의 자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명성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 의미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죠. 존 돈의 위치는 19세기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옥스포드 영시집에는 그의 시가 단 판 편밖에 실리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 그는 허버트 그리어슨과 T.S. 엘리엇에 의해 부활해서 17세기의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었죠.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바흐는 200여 년간 그늘에 가려져 있다가 멘델슨에 의해 재발견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재평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 좋은 일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반드시 필요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정상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반 고흐를 위대한 창의적 인물로 생각하지만, 동 시대인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이제 우리는 그가 위대한 미술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창의성은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의 창의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반 고흐와 동시대를 살았던 중산층 속물보다 위대한 미술에 대해 좀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좀더 객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반 고흐의 창의성은 충분한 수의 미술 전문가들이 그의 그림에서 미술영역에 기여할 만한 중요성을 발견함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응답이 없었다면 반 고흐는 이상한 그림을 그린 정신병자로 잊혀졌을 것입니다. 

 

창의성의 구성요소가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어진 장소와 시간에서 창의성의 수준이 개인의 능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역과 현장에서 인정을 받고 널리 알려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창의성에서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회사들은 시장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종업원들의 창의성을 개발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프로그램은 경영진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로부터 유용한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