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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상대성원리'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

by 슬생시즌1 2023. 9. 27.

아인슈타인

칙센트미하이는 긍정의 심리학 분야의 선구적 학자라는 평가와 더불어 심리학과 경영학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심리학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일찍이 행복과 창조성에 관계에 대해 연구해왔으며, 창조적인 사람은 전문지식, 창의적 사고, 몰입을 3가지 요소로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칙센트미하이의 창의성에 대한 연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인간 역사에서 창조는 신의 특권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전 세계의 종교들은 하나 이상의 신들이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만들어냈다는 기원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신은 또한 자신의 분노에 휘둘리고 보잘것 없이 나약한 존재인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그 공식이 뒤바뀐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2천 5백만 년 전 그리스나 일본에서 시도되었는지, 아니면 2천 년 후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수천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매우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으며,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처음 창조 신화가 생겼을 때 인간들은 추위와 배고픔과 짐승에 대해 무기력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해가 뜨고 지고, 별들이 움직이고, 계절이 변화하는 것과 같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힘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들은 두려움에 휩싸인 채 미지의 세상 속에 정착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러나 점차 빠른 속도로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자신들이 그렇게 무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계를 만들어 동력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인간의 기술과 욕구에 의해 지구는 변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화의 정상에 서서 창조자의 이름을 대신하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가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파멸의 원인이 될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러한 새로운 역할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면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바(힌두교에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세 신 중에 하나)나 여호와와 같은 고대 신들은 건설자인 동시에 파괴자였습니다. 우주는 신들의 자비와 분노 사이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또한 아름다운 정원이 될지 아니면 황무지가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만일 우리가 관리자로서  의무를 게을리 하고 새롭게 얻은 힘을 무분별하게 오용한다면 황무지가 될 가능성이 좀더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의 결과를 예견할 수 없다고는 해도 창조의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좀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미래는 인간의 창의성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활하고 일하는지에 대해 30년에 걸쳐 연구하고 종합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신비스런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창의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창의성에 대해 알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숲 속에서 나무가 넘어져도 그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이 없다면 들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거기에 귀를 기울여서 기록하고 실행하는 청중이 없는 한 사라져버립니다. 또한 평가할 능력이 있는 외부인이 없다면, 스스로 창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창의성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체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겨납니다. 그 세 가지 요소란 상징적인 규칙들을 포함하는 문화, 상징영역에 새로움을 가져오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새로움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전문가로 이루어진 현장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발견이 나오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천구운동에 대한 막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첨단 기술의 대형 망원경을 관리하는 연구소가 없었다면, 그리고 다른 천문학자의 비판적인 회의론과 협조가 없었다면, 대다수의 천문학적 발견은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이러한 요소가 창조과정에서 개인의 창의성만큼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창의적인 인물뿐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영역과 현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진화과정에서 창의성의 역할은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염색체의 화학작용이 임의적인 변형을 일으키는 유전적 변화 과정과 같습니다. 유전적인 변화는 갓난아이에게 새로운 신체적 특성으로 나타나는데, 만일 그 특성이 기존의 것보다 개선된 것이라면 그 아이의 후손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특성은 대부분 생존 가능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몇 세대 후에는 사라집니다. 극히 일부만이 지속성을 가질 뿐입니다. 

 

문명의 진화에서 생물의 유전자나 염색체와 같은 장치가 없으므로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이 자동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불이나 바퀴, 원자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은 그러한 발견 이후에 태어난 아이의 신경계통 속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문명의 진화에서 유전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모방자(밈: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생물의 유전자처럼 복제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며 우리의 생각과 문화를 형성하는 사상, 기술, 관습, 패션, 이야기 등이 모방에 의해 전파되는 것), 즉 정보의 단위입니다. 언어, 이론, 숫자, 법률, 요리법, 노래, 가치관 등은 모두 우리가 아이들에게 기억을 하도록 전해주는 것이 바로 모방자입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이러한 모방자를 변화키며, 만일 그 변화가 적절한 사람에게 충분히 인정을 받으면 문화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물건을 창조하는 사람을 연구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업적이 중요하다고 해도 과정 속의 한 단계이며, 사슬을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에 불과합니다.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했거나,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편리하고 단순화된 설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칙센트미하이가 창의성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에디슨이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그 이전의 지식이 없었다면, 그들의 사고를 자극한 지적사회적 조직망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들의 발견을 인정해주고 공표한 제도가 없었다면,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대성 원리가 아인슈타인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불을 일으키는 것이 불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꽃은 공기와 부싯돌이 없으면 타오르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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