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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잠복기, 생각의 숙성과정

by 슬생시즌1 2023. 9. 30.

생각의 숙성

창의적인 사람이 전문가 관점에서 어떠한 문제를 인식하고, 부딪쳐볼 만한 문제라는 것을 감지한 후에 창조적 과정은 한동안 멈춘 듯 보입니다.. 그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의문점을 품고 그 문제에 대해 몰입하다가 갑자기 어떤 해결책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 중간의 정신활동에 대해서는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는 사이의 빈 공백으로 인해 우리는 의식과정의 바탕에는 반드시 어떤 잠복기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 불가사의한 특성 때문에 잠복기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과정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의식은 어느 정도 논리와 이성의 규칙에 의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반적인 분석이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천재의 작품을 둘러싼 과정에 대해 신비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자칫 뮤즈의 목소리가 영감을 주었다고 설명하는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한동안 의식의 밑에 문제를 숙성시켜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의 사례를 들어 이 단계의 중요성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리먼 다이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순간이 창의적인 시기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사실 더 살펴봐야 알겠지만, 한가한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도 희곡을 쓰지 않을 때는 한가한 시간을 즐겼다고 합니다. 프리먼 다이슨 자신을 셰익스피어와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바쁜 사람은 보통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이슨은 한가하게 지내는 것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의 잠복단계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문제의 특성에 따라 다릅니다. 몇 시간에서 몇 주일,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맨프레드 아이겐은 매일 밤, 결과가 불분명한 실험,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이론을 머릿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아침에 깨어나면 갑자기 문득 문제 해결책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헤이즐 핸더슨은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조깅을 하거나 정원을 손질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돌아오면 다시 물 흐르듯이 생각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노엘 뉴먼은 수면이 부족하면 생각이 진부해지고 도식적이 된다고 말합니다. 

 

좀더 긴 잠복기를 예로 들면, 프리먼 다이슨이 파인만과 슈윙거의 이론을 조합시키는 방법에 대한 생각에 벗어나 2 주일간 캘리포니아 여행을 했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난해할수록 무의식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다윈의 진화이론은 잠복기가  얼마나 걸렸을까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그 위대한 작품이 언제 처음 창조자의 마음속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잠복기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어떤 문제에 전념하지 않고 있는 한가한 시간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잠복단계가 어떤 창조 과정에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인식론적인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잠복단계 동안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인식론적인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나 심지어는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어떤 종류의 지적인 과정은 머릿속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은 정신분석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식론이 정신분석이론과 다른 점은 무의식적인 사고로 방향을 돌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호기심을 통해 해결하려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식론자들은 아이디어가 의식적인 지시에서 벗어나면 단순한 연상법칙을 따라간다고 믿습니다. 아이디어가 다소 무작위로 결합하면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 간의 연결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난로에서 타는 불꽃이 원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났을 때 벤젠 분자가 고리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의식은 불꽃과 분자의 모양을 연결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서는 그 연결이 의식에 의해 걸러지지 않았고, 그가 깨어났을 때 더 이상 그 가능성을 신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혀 관계 없는 연관성은 저절로 해체되어 기억에서 사라지는 반면, 어떤 것은 끈질기게 머릿속을 떠돌면서 마침내 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잠복기 중에 일어나는 일을 컴퓨터의 직렬처리 방식과 병렬처리 방식의 차이로 설명해 볼 수도 있습니다. 구식 컴퓨터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차례차례 순서대로 해결해 나갑니다. 반면 좀더 발전된 컴퓨터 체계는 문제를 여러 요소로 나누어서 부분적인 계산을 동시에 수행하고 나서 다시 하나의 최종적인 답으로 재조합 됩니다.

 

어떤 문제의 요소가 잠복하고 있을 때 컴퓨터의 병행처리 방식과 유사한 처리방식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할 대, 해결점에 도달하기 위한 연습과 노력이 아이디어를 익숙한 방향을 따라 일직선으로 밀고 나갑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서는 의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의식 속에서 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생각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서로 결합합니다.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처음에는 이성에 의해 걸러진 독창적인 특별한 연계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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