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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자녀 교육에 관심없는 분은 클릭하지 마세요

by 슬생시즌1 2023. 9. 23.

자녀 교육

앞선 글에서 과학분야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사례를 들어 서술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과학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혹시 글을 읽지 않은 분들은 한 번 읽어 보시면 이해에 도움 되실 것 같습니다. 

 

인문학의 주된 학습법도 실재를 알려주기보다는 의사전달과 분석에만 치우쳐 있어 과학 분야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그 결과 예술가나 작가의 꿈을 가진 학생들이 교육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제도 교육이 창의성 계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 해 보려 합니다.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그녀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교육을 받았습니다. 울프의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Leslie Stephen)**은 당대 손꼽히는 걸출한 교양인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인명사전(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의 편집인이었을 뿐 아니라 위대한 문학가가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무미건조하고 분석적인 비평이 전부였습니다. 

울프의 회상에 따르면 아버지 스티븐은 철학자로서도 작가로서도 항상 패배 의식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지만 정작 딸에게는 자신이 그저 그런 이류 지성인에 불과했음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후에 울프는 그가 지니고 있었던 불일치, 다시 말해 비평 능력과 창작 능력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서 숙고하게 됩니다. 그냐가 분석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아버지를 보았을 때, 그는 날카롭고 명징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야말로 케임브리지적인 분석 정신의 경탄할 만한 전형적인 모범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생활 측면에서 보면 매우 조야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어서 아버지의 내면에는 뛰어난 초상화가와 색분필을 가지고 낙서나 하고 있는 어린애가 동시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고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울프는 아버지가 받은 케임브리지 교육이 일방적이고 두뇌만 집중적으로 사용토록 하여 정신을 불구로 만드는 교육이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받은 교육이 음악, 미술, 연극, 여행 같은 여가 활동에 대해 심각한 결핍증을 불러왔고 그 결과 지적 편중과 좁은 시야를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중반 케임브리지나 다른 영국대학에서 치러졌던 시험들은 극심한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이었고, 개인의 명예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스티븐이 이러한 편협한 분석 능력만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트라이포스(Triposes)로 알려진 이 시험은 주로  암기와 빠른 구두 답변으로 이루어졌는데, ‘주입식’ 공부에 강했던 스티븐은 143명의 영재들 중에서 20등을 차지했습니다. 훗날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되어서도 그는 학생들에게 항상 시험만 생각하고, 책에만 매달리며, 학사 학위를 따기 전까지 아무것도 즐기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학교 공부에만 과도하게 매달린 스티븐에게 예술에 할애할 시간이 남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는 문학비평이 아닌 다른 분야, 즉 미술이나 음악, 연극, 오페라 같은 분야에는 스스로를 필리스틴 사람(Philistine*)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지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예술가들이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개인적 세계에 매몰되는 존재라서 차라리 예술 행위의 유혹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스티븐은 나이가 65세쯤 되자 주변과 완전히 격리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분별력은 급격히 사그라들었고,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지 않고 거부하며 오히려 허위의식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 행하는 바에 대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능력도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시나 소설 쓰기처럼 타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딸 울프는 괄목할 만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문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대단히 혁신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한계와 진부함 속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그녀는 역대 어느 작가보다도 모험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학에 보내주지 않을 때만 해도 울프는 좌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규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독학을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울프는 집에서 폭넓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학습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년 아버지가 읽어주는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소설이나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등의 고전들을 접했습니다. 또한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의 기계전시실이나 자연사박물관의 곤충 전시실 같은 데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잠들기 전 형제들과 함께 지어낸 이야기를 가족 신문에 싣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모든 학습 경험은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울프는 책을 읽을 때 등장인물에게 완전히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으며 종종 자기 자신을 잊고 그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스티븐은 딸이 열한 살쯤 되었을 때 그녀가 장차 당대를 주름잡을 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 그녀는 역사, 전기, 여행과 모험담, 시, 소설, 에세이 작문 등을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정작 수학이나 아버지에게 배웠던 독일어 공부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던 개인교사로부터는 책 제본에 대해 배우고, 대학에 다니던 오빠가 집에 올 때면 문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최고의 문학 작품을 따라 써보는가 하면 하면 언니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울프는 문학의 ‘무엇’ 뿐만 아니라 ‘어떻게’를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소설은 단순히 읽을거리가 아니라 써야 할 무엇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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