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OO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우리 전공에서 똑똑한 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공부밖에 모르고 책벌레였던 그는 전 과목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기계학에 관한 강의가 끝나고 몇 주가 지난 후 물리학과 건물을 나오는 길에 우리의 천재 OO이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OO이는 키가 크고 마른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픽픽 쓰러지는 약골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오래된 강의실의 육중한 금속 철제문을 힘껏 밀었지만 문은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중 누군가가 손잡이 부분을 밀자 강의실 문은 너무도 쉽게 활짝 열렸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열었어?” OO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우리 중 누군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 지금 개그하고 있는 거지? 얼마전 기계학 수업에서 문과 관계되는 물리학 원리를 배웠잖아.” 실제로 OO이는 그와 관련된 방정식을 완전히 공부했고 중간고사에서는 최고의 점수를 받았었습니다. 그런 그가 원리를 모르다니. 그러나 OO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난 정말 이해를 못 하겠는데?”
우리는 그에게 힌트를 주었습니다. “넌 문 가장자리가 아니라 가운데를 밀었잖아.”
“그래서? 그게 뭐?”
“손잡이가 왜 문 한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냐?”
“그래야 걸어 잠그기에 편하니까 그런 거 아냐?”
“그야 물론이지. 그런데 거기에 어떤 물리학 원리가 관련 있는지 모르겠어?”
질문을 받은 OO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진짜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천재가 이토록 쉬운 원리를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토크! OO아, 토크를 생각해 봐!” 답답해진 우리가 다 함께 외쳤습니다.
토크(Torque)란 물체를 회전시키는 힘을 말합니다. 우리는 대개 렌치를 사용하거나 문을 여닫는 행위를 통해서 토크를 운동감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문을 열 때 경첩이 달린 쪽에서 먼 쪽을 밀수록 문이 쉽게 열린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자루가 긴 렌치를 쓸수록 힘을 덜 들이고 볼트를 풀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원리는 지렛대의 원리와 비슷합니다.
OO이는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계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문의 크기를 x로 놓고 회전축에서부터 힘이 가해지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y로 놓으면…… 문의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에 힘을 가할 경우 적은 힘으로 문을 열 수 있다는 답이 나옵니다. OO이는 불과 몇 분 만에 계산을 끝냈습니다. 문제는 OO이의 머릿속에 있는 이론과 자신이 겪고 있는 실제 세계의 물리학적 경험을 연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물리학 시험에 나온 토크 문제를 수학 공식을 이용해 풀긴 했지만, 그때는 그저 토크 방정식의 이론적인 면만 외웠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지닌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계산 능력을 일상에서 연결시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론’은 ‘실생활’과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 ‘따로국밥’과 같았습니다.
전자의 발견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실험물리학자 조지프 J. 톰슨*(Joseph J. Thomson)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물리학을 강의하면서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많은 학생이 렌즈에 관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잘 풀면서도 막상 렌즈를 이용해 촛불을 관찰하라고 시키면 렌즈의 어느 쪽으로 촛불을 들여다봐야 하는지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수학이라는 것이 단지 시험지에 답을 써내는 용도로만 쓰인다고 여기는 학생들의 생각이 상당히 흥미로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중등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계학 지식을 실생활에 전혀 응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과학의 세계와 실제 세계는 방수벽으로 막아놓은 것처럼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학교지식과 실제 생황 간의 단절현상은 오늘날 교육에 만연해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과 어떤 교수는 한 심포지엄에서 이런 현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적분학에 능통한 MIT 학생들조차 막상 이를 물리학에 응용하려고 할 때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일류대학에서 물리학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면 상대성이론을 나타내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풀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정식을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잇는 학생은 몇 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지 소수의 학생만이 아인슈타인이나 리처드 파인먼 등과 같은 물리학의 대가들처럼 자신들이 수학적 ・ 물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수학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느냐를 배우지 못하고 그저 전달언어로서의 수학을 배울 뿐이라는 것을 위의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총명하다고 하지만, 전체를 알지 못하고 반만 아는 헛똑똑이일 뿐입니다.
*조지프 J. 톰슨 Joseph J. Thomson
1856-1940, 영국의 실험물리학자, 양극선 연구로 입자를 질량에 의해 분리하는 법을 창안하고 네온의 등위원소 분리에 성공하였다.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앙리 푸앵카레 Henri Poincaré
1856-1912, 프랑스 수학자로, 19세기에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손꼽힌다. 제타-푸크스 함수이론을 발전시켰고, 광학, 전기학, 열역학 등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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