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가 어떤 만찬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시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전문적인 요리사, 요리장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 ‘부엌'에서 전문 요리사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가 더 요리를 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리의 대가가 되려면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오랫동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요리의 대가가 되고자 한다면 필요한 요리 도구의 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요리법을 배우며 실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요리법은 ‘무엇을 요리 하는가'에서 '어떻게 요리 하는가'로 초점이 옮겨져야 합니다.
요리는 부엌에서 만들어집니다. 거기서 여러 가지 재료들은 절여 지고 졸여지고 살짝 튀겨지기도 하며, 때로는 다져지고 구워지고 휘저어져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마치 요리의 대가들이 어떤 재료는 조금만 뿌리고 어떤 재료는 듬뿍 넣는 등 변화무쌍한 동작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요리에 대한 대담한 아이디어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솟아오르고, 생각지도 못한 재료들과 섞이기도 합니다. 요리법 자체만 들여다보아서는 완성된 요리가 어떨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요리의 대가들은 요리가 어떤 맛일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상으로 재료를 혼합한 것만 가지고도 어떤 맛일지 직감으로 아는 것입니다.
위에서 음식 요리와 관련된 일련의 행위들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눈치를 채신 분도 있겠지만 창의적 사고는 요리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먼저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을 요리사에 비유하고, 창조적 결과물을 만찬 음식에 대입해 보면 그 의미가 들어맞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창의적 사고를 하는 자는 여러 가지 정신적 재료들을 가지고 맛을 내고 섞고 조합하는 것에 능숙한 사람과 같습니다.
누구나 생각을 할 줄은 압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똑같이 ‘잘’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과 우리의 차이를 전문 요리사와 우리의 차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우리는 요리사처럼'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초점을 옮겨야 합니다. 동시에 '잘' 생각하기 위해서는 앞선 비유에서 언급한 재료의 혼합이 어떤 맛일지 아는 요리사의 '직감'이 창의적 사고에서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직감이란 무엇일까요? 직감이란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례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물리학 문제를 푸는 데 수학 공식과 숫자, 복잡한 이론과 논리를 동원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가 최근에 쓴 책에서도 아인슈타인을 '논리 수학적 사고'의 전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동료들은 그가 상대적으로 수학에 취약했으며, 자신의 작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자주 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학이 애먹인다고 걱정하지 말게. 나는 자네보다 훨씬 심각하다네"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가 동료인 자크 아다마르(Jaques Haddmard)에게 털어놓은 대로라면 아인슈타인은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라는 것, 글로 된 것이건 말로 된 것이건 간에 언어는 나의 사고 과정 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고과정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심리적인 실체들은 일종의 증후들이거나 분명한 이미지들로, 자발적으로 재생산되고 결합하는 것들이다. 내 경우에 그 요소들이란 시각적이고 때로는 '근육까지 갖춘 것'들이다." 모종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에서 그는 자신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광자라고 상상했습니다. '광자'인 그가 보고 느끼는 것을 '상상'하고 나서 그는 또 다른 광자의 역할을 맡았고, 첫 번째 광자의 역할에서 경험한 것을 상상하려고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심리학자인 막스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그는 이 시각적이고 '근육 질적인' 사고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매우 어렴풋하게 이해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아인슈타인의 표현 그대로 말하자면 "그 방향에 대한 느낌은 매우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유전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바버라 매클린 턱(Babara McClintock)이 젊은 시절 경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930년 어느 날 그녀는 코넬대학 주변의 옥수수 밭에서 동료 과학자들과 유전학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전체 옥수수의 절반 정도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가루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삼분의 일 정도에서만 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차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매클린톡은 무척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옥수수밭을 떠나 언덕 위에 있는 연구실로 가면서 혼자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30분쯤 후, 그녀는 펄쩍펄쩍 뛰며 옥수수밭으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유레카, 답을 알아냈어! 왜 불임 꽃가루가 30퍼센트밖에 안되는지 알아냈다고!" 흥분하는 그녀에게 동료들은 시큰둥하게 대꾸했습니다." 그럼 증명해 봐." 그런데 정작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 깨달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후, 매클린톡은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문제를 풀다가 답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면,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 속에서 해답을 구한 경우다. 나에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다. 나의 확신은 절대적이었지만 말로 설명하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게 답이라고 확신했을 뿐이었다."
안다는 것이 이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한 방식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본인들에게도 심각한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문제를 푸는 모든 과정은 눈 깜박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답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달렸다. 그러고 나서야 하나씩 차근차근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과정이 아주 복잡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답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중에 도식을 가지고 풀자 답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자, 그런데 나는 종이 위에 써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서 그토록 흥분하며 '유레카! 답을 알았어!'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을까?"
매클린톡의 이러한 의문은 '창조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돌연한 계시와 통찰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어떻게 우리는 말하거나 그리거나 쓸 수 없는 것들을 '아는' 걸까요? 우리는 어떻게 느낌을 말로, 감정을 숫자로 옮길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과연 창조적 상상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연습하고 훈련하고 가르치고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숙고해 왔습니다. 신경생물학자들은 뇌의 구조와 신경 시냅스 간의 연결구조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고 애써왔습니다. 아직 완전한 답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창조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요소들은 과소평가 되고 또 간과되고 있습니다. 탁월한 사색가, 창작가, 발명가들의 경험이 그것입니다. 그들의 내적 경험들은 창의적 사고와 관련된 모든 의문을 풀어주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그 연구를 위한 중요하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줄 수는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경험은 사고 자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충분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 관념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전 논리적인 사고의 형태가 누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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