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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우등생이 창의성이 없는 이유

by 슬생시즌1 2023. 9. 21.

과학자



  소위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 과학자나 수학자, 예술가(작곡가, 작가, 조각가 등)들은 우리가 ‘생각을 위한 도구’라고 부르는 공통된 연장을 사용합니다. 이 도구들 속에는 정서적 느낌, 시각적 이미지, 몸의 감각, 재현할 수 있는 패턴, 유추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상상을 동원하는 모든 사람은 이 생각 도구를 가지고 얻어낸 주관적인 통찰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공식적인 언어로 변환(번역)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나 예술가들이 창조 행위의 보편성에 주목해 왔습니다. 1980년에 열린 제16차 노벨 회의에 모인 과학자들과 음악가들, 철학자들은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의 말을 인용하며, “과학과 예술이 유사하다는 말은 ‘창조’와 ‘행위’에 관련한 매우 유효하다. 창조라는 점에서 둘은 매우 비슷하다. 장인의 경지에 이른 창조 행위가 주는 미적 쾌감은 과학 분야에서도 대단히 강력하다” 라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한 음악가는 과학자와 예술가의 사고 과정이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것을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맞는 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자들이 ‘공통적인 문제 해결법’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예술가들은 ‘공유된 영감’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과학이든 예술이든 모든 ‘해답’은 동일한 창조 행위를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면역학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샤를 니콜(Charles Nicolle)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상상력이나 직관은 예술가나 시인들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현실로 이루어지는 꿈과, 무언가를 창조할 듯한 꿈은 같은 것이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아르망 트루소(Armand Trousseau)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모든 과학은 예술에 닿아 있다. 모든 예술에는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그동안 우리가 창조 과정의 보편성에 주목해 왔다고는 하지만 그 주목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직관적인 생각 도구가 학문에 공통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근시안적인 인식과 태도는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뿐만 아니라 교육자들에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단계의 커리큘럼이 과정이 아닌 결과에 의해 규정되어서 어떻게 여러 과목 나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육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은 문학, 수학, 과학, 역사, 음악, 미술 등으로 분리된 과목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 과목들은 본질적으로 별개의 것이고 상호배타적인 것처럼 분리되어 있습니다. 

  요즘 우리 교육에서는 ‘교과목 통합’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통합 수업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진정한 통합수업은 드물 뿐 아니라, 모든 지식을 망라하고 아우를 수 있는 커리큘럼은 아예 생각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한 학문과 다른 학문을 엮어줄 수 있는 직관적인 생각 도구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습니다. 수학자들은 오로지 ‘수식 안에서’, 작가들은 ‘단어 안에서’, 음악가들은 ‘음표 안에서’ 만 생각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각 학교와 대학들은 필요한 재료의 절반만을 사용하는 요리법을 고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생각하기’의 본질을 절반만 이해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가르치는 방법의 절반만 이해하고 학생들은 배우는 방법의 절반만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리된 과목과 공식 언어체계에만 기반을 둔 현행 교육이야말로 ‘창조적 사고 과정’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고 있는 주범임이 분명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수학적이고 통사론적 논리를 가르치면서도 느낌과 직관의 초 논리는 무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과 숫자를 통해 배우고 평가받아 왔으며 그것을 통해 사고하는 것을 불변의 전제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학교 교육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이 더 이상 만연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사고’라는 직관적인 ‘방언(수학 공식이나 논리 같은 공식 언어가 아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방언은 서로 통찰을 주고받는 데 있어서 말이나 숫자만큼 중요합니다. 본래 통찰이라는 것은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되는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 속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느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과목도 필히 커리큘럼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몸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주목하고 그 느낌을 발전시키며 사용해야 하는지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다행히 요사이 의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학문적 사고의 기반으로 직관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창조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느낌과 감정과 직관의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사명과 같습니다. 그것이 ‘정신적 요리; 혹은 교육의 요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가 전문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 통합의 시대입니다. 이제 어느 것 하나만 잘하는 것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지식사회를 선도해 갈 인재들은 전문가들이 간과한 지식 대통합을 통해 분야를 넘나드는 창조적 사고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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